이천수, '축구천재'와 '문제아' 사이
허회원 | 등록 2013-01-28 07:53 | 최종 수정 2013-08-08 16:38




이천수는 2002년 울산 현대에서 데뷔해 그 해 소속팀을 K리그 준우승으로 이끌며 신인왕을 차지했다. 신인임에도 7득점 9도움을 기록하며 팀의 공격을 주도하면서 '축구 천재'의 시대를 알렸다. 이어, 2002 한일월드컵에서는 자신의 실력을 발휘하며 국민들에게 4강 신화라는 영광을 안겼다. 매 경기마다 이천수는 빠른 발을 활용한 측면 돌파와 화려한 기술로 팀의 승리를 이끌었고, 과감한 발언으로 언론에 노출되는 단골 손님이었다.



2003년 이천수는 레알 소시에다드로 이적하며 한국인으로서는 첫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무대에 진출했다. 첫 스페인 무대 진출이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천수의 행보의 집중했고, 그의 활약을 기대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천수는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누만시아로 임대된 후 스페인 생활을 종료했다.



이천수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수식어가 바로 ‘월드컵 스타’다. 월드컵에서 이천수의 활약은 소속팀에서 뛸 때와는 달랐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에도 4강 신화의 주역으로 자리매김하며 국가대표 생활의 전성기를 누렸고,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도 활약했다. 특히 토고와의 경기에서 그의 동점 프리킥 골은 아직도 국민들의 가슴을 울리고 있다.



이천수의 화려한 실력 뒤에는 언제나 돌발행동이 따랐다. 이천수는 울산 소속이던 2003년, 수원과의 경기에서 수원 서포터즈와 충돌했다. 이날 경기에서 이천수가 부상으로 인해 경기장에 쓰러져 있는 상황에서 수원 서포터즈는 일어나라는 콜을 보냈다. 이에 이천수는 당당히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 들며 팬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흥미로운 점은 수원 서포터즈와 대립한 이천수가 결국 이후에 수원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천수는 스페인 생활을 종료한 후 울산으로 다시 돌아와 3년 간 활약하며 제2의 전성기를 보내게 된다. 이후 네덜란드로의 해외진출을 통해 세계무대에 다시 한 번 발을 디뎠다. 그러나 성공을 기대했던 이천수는 예상 밖의 임대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특히 이천수는 충돌을 빚었던 수원에 입단하게 됐다. 수원에 합류 후 데뷔전에서 득점을 기록하며 부활의 신호탄을 쐈으나 출장 기회를 잡지 못하며 전남으로 재임대 되었다. 폐예노르트에서 수원으로 임대되고 수원에서 또 다시 전남으로 재임대 되면서 '축구 천재' 이천수의 굴욕적인 임대생활이 이어졌던 것이다.



2009년 이천수는 전남으로 재임대되어 8경기에서 4득점 1도움을 기록해 전남의 스타로 떠올랐다. 하지만 이천수는 심판에게 모욕적인 행동을 보이는 등 전남에서도 문제아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했다. 결국, 시즌 도중 카타르의 알나스르와 계약을 체결하며 전남과 돌이킬 수 없는 갈등을 빚었다. 이천수는 이적을 진행시켰고 전남은 이천수를 임의 탈퇴시키며 국내 무대와 이별했다.



현재 이천수는 국내 무대 복귀를 위해 반성과 함께 봉사를 다니며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있다. 특히 지난 시즌 막판 전남의 홈경기에 모습을 드러내며 경기장을 찾은 관중들에게 일일이 사과를 구했다. 전남이 아직까진 이천수에 대한 임의탈퇴를 풀진 않았으나, K리그 클래식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그의 재능을 묵혀 두긴 아깝다. 다시 국내무대를 밟는다 하더라도 경기 감각이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이천수의 재능이라면 충분히 다시 재기할 가능성이 높다. 단, 이천수의 문제아 기질이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