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프랜차이즈 | 야구에선 누가있나?
박재준 | 등록 2013-04-23 05:44 | 최종 수정 2013-08-07 15:08

팬들에게 사랑과 질타를 동시에 받으면서 애증의 대상이 되기도 했던 그들. 그들로 인해 우리는 한 팀의 팬이 됐고, 스포츠를 사랑하게 됐다. 한때는 어릴 적 우상이었고, 그런 기억들로 먼 미래의 추억이 될 나만의 스타. 각 구단들의 프랜차이즈 Player를 소개한다. 글 = 박재준 / 구성 = 김명보

한국 프로야구에서 타격에 있어서 7개 부분에서(득점, 안타, 루타, 볼넷, 4사구, 타점, 최다홈런) 1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양준혁은 명실상부 삼성의 프랜차이즈 Player라고 불린다. 과거 해태와 LG에 짧게 발을 들였지만 그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삼성맨이다. 삼성에 입단하기 위해 군입대를 택했고, 구단으로 인해 다른 구단으로 이적했지만 삼성으로 오기 위해 FA를 신청하고 삼성에 남기 위해 FA를 포기한 양준혁. 파란 유니폼을 입은 그의 모습을 보려 팬들은 야구장을 찾았다. 그는 2010년 9월 19일 SK와의 은퇴경기까지 자신의 신념이었던 전력질주를 멈추지 않았다. 양준혁이 이제 그라운드를 뛰는 모습을 볼 수 없지만 그는 그가 받았던 사랑을 TV매체, ‘양준혁 야구재단’ 등을 통해서 다시 돌려주고 있다.

SK는 쌍방울 레이더스 선수들을 영입하였고, 태평양과 현대를 이어온 인천야구의 아이콘으로 전신이 누구다 라고 정하기는 애매하지만 SK 자체만으로 놓고 볼 때 SK의 프랜차이즈 Player는 ‘든든한 안방마님’ 박경완이다. 이만수(現 SK 와이번스 감독) 이후 공격형 포수의 선두를 이끌며 수비에서도 투수 리드, 블로킹, 도루 저지 등에서도 활약이 뛰어나 완성형 포수의 평을 듣는다. 1991년 전주고 졸업 후 신고선수로 쌍방울 레이더스에서 데뷔한 그는 2000년에 국내최초 4연타석 홈런과 2001년 포수 최초 20-20클럽 가입을 기록했고 현대 시절 1998년, 2000년 2번의 한국 시리즈 우승에 공헌했다. SK에서의 세 차례 우승에도 큰 힘을 보태며 '팀 전력의 절반'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아킬레스건 수술 등으로 힘든 시기를 겪었지만 2013년 화려한 재기를 꿈꾸고 있다. 

독특한 타격 폼, 탱크, 근성의 아이콘, 부산 야구의 자존심 박정태. 동래고와 경성대를 졸업한 그는 1991년 롯데에 입단과 함께 신인시절 2루수 골든글러브를 받는다. 1993년 발목뼈가 부러지고 인대가 끊어지는 부상으로 선수생활의 위협을 받지만 95년 5월 16일 LG와의 홈경기에 복귀하면서 4타수 3안타의 기록을 통해 자신의 건재함을 증명하였다. 1999년 삼성과의 플레이오프에서 펠릭스 호세가 홈런을 날리자 관중석에서는 야유와 오물이 날라왔고 이에 발끈한 호세가 관중석에 방망이를 던지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에 호세는 퇴장선언을 받았고 당시 롯데의 주장이었던 박정태는 “오늘은 꼭 이겨야 한다”며 선수들을 독려했고 롯데는 한국시리즈 진출한다. 박정태가 롯데의 간판 스타가 된 이유는 뛰어난 실력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고 일어나는 오뚝이 같은 정신이었다. 아직도 롯데 팬들은 그의 플레이를 그리워한다.

1998년 두산의 전신인 OB 베어스에 입단한 김동주는 2000년 5월 4일 롯데와의 경기에서 잠실구장 최초로 장외홈런을 때려내면서 현재 이대호(오릭스 버팔로스)에 버금가는 파워를 보여주었다. 2004년 시즌 이후 연봉협상 문제로 은퇴를 선언했다가, 번복하는 해프닝을 빚기도 했다. 두산의 주장으로써 ‘두목곰’이라고 불리는 그는 두산의 정신적 지주였다. 특히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일본과의 경기에서 홈으로 쇄도하면서 포수 태그를 피해 슬라이딩 한 모습은 두산 뿐만이 아닌 국민 모두가 탄성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12시즌 동안 통산 타율0.314, 233홈런, 919타점의 기록으로 최고의 모습을 보여준 그. 2012시즌 부상으로 부진했지만 13시즌 곰들의 우두머리의 부활을 기대한다.

선동열, 이강철, 김성한 등 뛰어난 선수들을 많이 배출해 낸 KIA(前 해태). 그 중에서도 최고의 프랜차이즈 Player는 이종범을 꼽고 싶다. 투수는 선동열, 타자는 이승엽, 야구는 이종범이라고 불릴 정도로 그는 전국구 스타였다. '야구천재' 이종범은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최고의 '5툴 플레이어'로 불린다. 타격정확도, 파워(장타력), 수비, 송구, 주루가 완벽했던 선수였다. 특히 당시 기록원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종범의 등장으로 넓은 수비 범위 때문에 유격수 수비 실책 규정이 바꼇단 일화가 있다. 그만큼 그의 수비 실력이 좋았단 얘기다. 일본에 진출 후 복귀한 KIA 타이거즈에서 2009년, 타이거즈의 10번째 우승이자, 자신의 4번째 우승을 이끌었으며, 이용규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야구팬들의 가슴을 울렸다. 그라운드에서 항상 베이스를 훔쳤던 ‘바람의 아들’ 이종범은 2012년 은퇴를 끝으로 화려한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비록 김응룡 감독의 부름에 한화 주루 코치로 새로운 야구 인생을 시작했지만 타이거즈 팬들에게 타이거즈 최고의 프랜차이즈 Player는 이종범일 것이다.

한결같은 늙은 소나무를 빗대어 ‘노송’이라고 불리는 김용수. LG 트윈스의 전신인 MBC 청룡에 1985년 데뷔한 그는 90년대 LG 부흥기를 이끈 특급 선수였다. LG가 현재 DTD(Down Team is Down :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의 아이콘이 되기는 했지만 팬들은 1990년, 1994년 LG의 우승 당시 팀에 많은 기여를 한 김용수를 기억한다. 빠른 속구를 가진것은 아니었지만, 직구와 변화구를 완벽하게 제구를 할 수 있는 그는 특급선수 였다. 1998년 38살의 나이로 18승 6패 2세이브로 다승왕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는 2000년 은퇴까지 역대 통산 세이브 2위, 통산 다승 역대 6위, 투수 최초 600경기 출장기록을 가졌다. 한국 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100승-200세이브를 기록한 선수이기도 하다. 철저한 자기 관리와 훈련으로 태어난 완벽한 그를 LG의 프랜차이즈 Player라 칭하고 싶다.
 

한때 경로당이라고 불렸던 한화는 유독 레전드급 프랜차이즈 Player들이 많다. 그 중에서도 한화의 상징인 독수리와 매처럼 날카로운 피칭을 선보였던 송골매, 선수협 초대회장으로 회장님이란 별명을 가진 송진우를 소개한다. 충청북도 증평군 출신으로 세광고와 동국대를 졸업한 그는 89년 한화의 전신인 빙그레에 입단했다. 첫 경기에서 완봉승을 기록하며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데뷔한 그는 2009년 은퇴까지 각종 수상을 비롯 한국 프로야구 사상 최초 200승(2006년), 3000이닝(2009년), 2009년 최고령 선수로 많은 야구인들에게 귀감이 됐다. 특히 2000년 5월 18일 해태와의 경기에서 노히트 노런(통상 11번째)의 경기는 최고령 노히트 노런의 기록이 됐다. 20년간의 선수생활에서 최다승, 최다이닝, 최다 탈삼진 등의 기록을 가지고 있는 그는 코치로서 또 한명의 프랜차이즈 Player를 육성중에 있다. 

대학시절 최고의 1루수로 평가받았던 이숭용은 1994년 태평양 돌핀스에 입단했고 백업요원으로 활약했다. 1996년 태평양을 인수한 현대에서 박재홍, 박진만 등 현대왕조의 중심 타선에서 큰 역할을 했다. 2007년 현대가 해체되기전까지 팀의 주장을 맡으며 리더로서 캡틴 이숭용이라는 별명이 생겼고 현대 선수단을 인수한 넥센에서 은퇴까지 통산 2000경기 출장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팀이름은 변했지만 태평양부터 실질적인 후신인 넥센까지 한팀의 소속으로 2000경기에 출장하는 프로야구 출범 이래 최초의 의미있는 기록을 남기며 화려하지는 않지만 꾸준한 모습을 보여주며 후배들에게 귀감이 될만한 선수생활을 2011년 마감했다. 은퇴 이후에 해설위원으로서 팬들과 소통하고 있는 그는 꾸준함의 대명사로 넥센의 프랜차이즈 Player가 되기에 충분하다.





삼성 라이온즈에는 류중일(現 삼성 라이온즈 감독), 박진만(現 SK 와이번스)등 뛰어난 유격수들이 많았다. 이 유격수 계보를 잇는 차세대 유격수로 김상수를 꼽는다. 경북고를 졸업하고 삼성에 입단한 김상수의 장점은 정확한 송구와 강견, 빠른발과 수비감각이다. 호수비를 통해 팀의 사기를 높이고 빠른 발을 이용해 상대 팀을 흔든다. 테이블 세터로서 지금보다 정교한 타격만 보완한다면 삼성 유격수 계보의 상징 백넘버 7의 주인공이 프랜차이즈 Player로 성장 할 수 있을 것이다.


호타준족의 대명사 박재홍에 가장 근접한 차세대 호타준족 최정. 지난해 개인 최다 홈런 기록(26개)을 갈아치우며 거포 이미지까지 장착한 최정은 현역 3루수 가운데 단연 최고로 꼽힌다. 타격 뿐만 아니라 넓은 수비 범위와 강한 어깨에서 뿜어져 나오는 정확한 송구로 선수로서의 능력을 두루 갖춘 최정은 SK의 차세대 프랜차이즈 Player가 되기에 무색함이 없다.





타격기계라고 불리는 김현수는 2006년 신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두산 베어스에 입단했다. 2012시즌, 전보다 주춤했지만 두산 중심타선의 붕괴와 전체적인 타순, 타격이 팀으로서 잘 굴러가지 않음에도 팀에서 발군이었다. 키 190cm 몸무게 100kg의 몸이지만 보기와는 다르게 몸이 날렵하고 수비범위도 넓다. 2013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으로도 발탁된 김현수. 2013시즌을 넘어서 먼 미래에 까지 두산과 대표팀을 이끄는 차세대 프랜차이즈 Player로 성장 할 수 있을지 기대해 본다.

2007년 영남 사이버대학교를 졸업하고 롯데에 입단한 손아섭(2008년 손광민에서 개명)은 최근 3년간 꾸준히 맹활약을 펼쳤다. 2011년 데뷔 첫 골든 글러브를 수상하고 2012년에도 공격뿐만 아니라 수비에서도 시즌 내내 꾸준히 활약하여 3년 연속 3할 타율과 타율 3위, 158개의 최다 안타로 첫 타이틀홀더가 되었고 2년 연속 골든 글러브 수상에 성공했다. ‘악바리’ 박정태를 잇는 롯데의 차세대 프랜차이즈 Player는 손아섭이 되지 않을까?

‘아기 호랑이’ 안치홍은 2012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넥센 신인 서건창에 밀려 수상에 실패했다. 입단 첫해인 2009년에는 올스타전 MVP를 수상했고, 그해 팀의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 제패 때도 주전 자리를 지켜냈다. 입단 이후 매년 성적이 꾸준히 올랐던 안치홍은 실력을 입증했고 차기 국가대표 2루수를 꿈꾸고 있다. 과거 해태의 선수들처럼 안치홍이 타이거즈 팬들의 마음을 훔칠 수 있을까?


오지환은 지난 시즌 팀 야수 가운데 유일하게 페넌트레이스 133경기를 모두 뛰었다. 오지환은 성장세를 보이면서도 이따금 수비 실책을 범하면서 저평가를 받았다. 2013시즌을 앞두고 유지현 코치는 “유격수로 제대로 평가받을 단계로 올라섰다”고 전했다. 과거 유지현, 서용빈, 김용수등 90년대를 대표했던 프랜차이즈 Player들이 사라진 LG의 빛을 오지환이 밝힐 것이다. 



2011 신인드래프트 1순위 1지명 하주석. 고교 1년시절 김영민 타격상을 수상했고 메이저리그 각 구단에서 러브콜을 받았지만 이를 거부하고 한화에 입단했다. 아직 타격에 있어서는 기대만큼 오르지 않았지만 센스있는 주루 플레이와 수비로 한화 팬들의 사랑과 기대를 모으고 있다. 명장 김응룡 감독이 과거 많은 스타 플레이어를 배출한 것처럼 명장의 아래서 하주석 또한 먼 훗날 한화의 프랜차이즈 Player로 성장 할 것이다.

2009년 넥센에 1차 지명으로 입단한 강윤구는 140㎞ 중반의 빠른 직구가 장점이다. 지난 시즌 127개의 탈삼진을 솎아냈지만 제구력 난조로 74개의 볼넷을 허용했다. 제구력이 받쳐준다면 넥센을 대표하는 간판 스타로 성장 할 수 있다. 강윤구가 넥센을 넘어서 리그를 점령 할 그날을 기다려 본다.





프로야구 9번째 심장 NC 다이노스의 미래라고 불리는 나성범은 작년 퓨처스 리그에서 0.303(3위)타율, 29도루(2위), 16홈런(1위), 67타점(1위)으로 맹활약 했다. 김경문 NC 감독나성범에게 "타자로 활용하고 싶다. 프랜차이즈 스타로 키우고 싶고, 재능도 타격에 많아 보인다"고 말했다. 김감독의 뜻대로 나성범이 NC의 미래를 이끌어갈 선수가 될 수 있을지 지켜보자.